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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사람은 누구나 다 죽습니다.

by 영혼육건강 2025.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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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다 죽습니다

 

남녀노소,빈부귀천없이 , ᆢ

나이 많아 죽지만, 세월호 사건같이 젊은 나이에 죽습니다.

 

죽음을 떠올리면 가슴이 문득 서늘해지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서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죽음을 회피하지 말고 오히려 지혜롭게 바라보라고 권면해요.

우리는 종종 죽음을 말끝마다 미뤄 두곤 합니다, 바쁘다는 이유와 두렵다는 핑계로요. 그렇지만 죽음은 인생의 필수 과목이라서 결국 마주치게 될 거예요. 젊은이도 노인도, 부자도 가난한 이도 예외가 없다는 사실이 참 담담하게 다가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죽음은 종착지가 아니고요, 하나님 앞에 서는 입구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을 더 조심스럽게 살고 싶어져요.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단순한 미지의 공포 때문만은 아니겠죠. 성경은 죄의 결과가 죽음이라고 진단합니다. 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선언이 마음을 차분히 흔들어요. 숨이 멎는 육체의 끝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영적 단절이야말로 더 깊은 죽음일 겁니다.

그래서 죽음은 우리에게 질문을 건넵니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았니?”, “어떤 마음으로 사랑했니?”라고요.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핑계를 찾다가도, 양심이 조용히 대답을 요구한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결국 삶의 방향이 죽음 앞에서 선명해지거든요.

누군가는 죽음을 모든 것의 소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믿음의 눈은 다르게 봅니다. 죽음은 이고, 그 너머에는 영원이 이어져요. 그렇다면 오늘의 시간은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하찮지 않겠지요?

여기서 복음이 우리를 붙들어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망 속에 내버려두지 않으셨고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의 죄짐을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무덤에 장사되셨는데요,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자물쇠를 부숴버리셨어요. 이 승리가 오늘 우리의 담대함이 될 거예요.

주님의 부활로 인해 죽음의 정의가 바뀌었습니다. 이제 죽음은 신자의 삶에서 하나님 품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었지요. 길 앞에 드리운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도, 그림자 너머에 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한 걸음 더 떼게 됩니다.

죽음을 묵상한다는 건 우울해지자는 뜻이 아니에요. 오히려 소중한 것의 순서를 바로잡기 위함입니다. 사랑을 미루지 말자고요, 용서를 내일로 넘기지 말자고요. 오늘의 미소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영원으로 이어질 거예요.

장례식장의 고요함을 기억합니다. 눈물과 한숨 사이에서도 저는 작은 평안을 느끼곤 했어요, “주님이 살아계시니 우리도 다시 살리라”는 약속 때문입니다. 이 고백이 제 심장에 맥박처럼 뛰고 있더라고요.

물론 두려움이 전혀 없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마지막 숨을 내쉴 그 순간을 상상하면 가끔은 마음이 떨려요. 그런데 주님이 먼저 죽음의 강을 건너셨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혼자가 아니겠다는 확신이 조용히 다가옵니다.

그래서 저는 죽음을 대비하는 일을 조금씩 실천하려고요. 재산을 정리하는 서류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기도의 자리에 앉고,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의 확신을 붙드는 것 말이죠.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 이 외침이 허공의 메아리가 아니고요, 부활하신 주님 곁에서 나오는 담대함의 노래일 거예요.

죽음을 생각하면 삶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서두르기보다 정직을, 소유보다 관계를, 화를 내기보다 온유를 선택하려는 마음이 자라나요. 사소한 친절 하나가 누군가의 밤을 밝힌다는 사실을 우리는 더 자주 기억하게 됩니다.

때로는 상실이 우리의 등을 굽게 만들죠. 사랑하는 이를 보내고 남겨진 자리에서, 말문이 막히는 날이 있거든요. 그럴 때 저는 조용히 속삭입니다, “주님, 이 어둠을 지나가게 하소서”라고요. 그러면 새벽빛 같은 위로가 조금씩 번지더라고요.

기도합니다: 주님, 죽음을 두려움으로만 보지 않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깊이 붙들어, 마지막 순간에도 평안히 당신 품에 안기게 하실 거예요. 오늘을 사랑으로 살게 하시고, 용서를 망설이지 않게 하소서.

죽음은 우리에게 ‘충만하게 살라’고 일깨우는 스승 같아요. 우리는 모두 유한하니, 한 끼의 식탁을 감사로 채우고, 한 번의 포옹을 아끼지 말아야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을 신뢰하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 저는 알게 되겠죠, 두려움의 강이 사실은 사랑의 강으로 이어졌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강을 먼저 건너신 주님이 제 이름을 부르며 맞이해 주실 겁니다. 그 생각만으로도 오늘을 견딜 힘이 생겨요.

“그가 살아계시니 나도 살리라”(요 14:19) — 이 약속이 우리에게 새 숨을 불어넣습니다, 지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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